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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14일 일요일 복음: 요한복음 1, 12-XNUMX

07월 14일 일요일 복음, 요한복음 1, 12-XNUMX: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로하시다

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당신은 신을 믿습니다. 또한 나를 믿으십시오.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당신은 내가 가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아버지께로 가는 길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면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내 안에 사셔서 그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으십시오. 또는 적어도 작품 자체의 증거를 믿으십시오. 12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 나는 Carlo Miglietta, 의사, 성서학자, 평신도,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www.buonabibbiaatti.it).

또한 오늘 저는 특히 자비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복음에 대한 짧은 묵상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요한은 "유언" 또는 "고별 설교"라는 문학적 장르에 따라(창 13:31-17:26; Dt; Js 47-29, 고전 49-33, 엡 22:24-1, 행 28:29-14…).

단결은 극적인 심리적 분위기에 의해 제공됩니다. 그것은 종말론적 담론, 즉 마지막 때와 관련된 담론이지만, 그것을 선포하는 교회는 파스카 신비 안에서 종말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압니다.

오늘의 전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구절을 간단히 분석해 봅시다(요 14:1-12).

텍스트 :

v. 1: 믿음: 어근 'mn'(“아멘”!)에서 나온 히브리어 단어는 고수, 확고함을 나타냅니다. 믿음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v. 2: 거처: 유대 묵시록에서 하나님의 하늘 집은 방이 가득한 큰 궁전으로 상상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한이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주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v. 3: 예수님의 재림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영광 중에 예수님을 만날 우리의 죽음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v. 5: 도마는 충실한 제자의 유형이지만 항상 이의와 질문을 제기합니다.

v. 7: 지금부터: 최고의 계시의 '시간'이다.

v. 10: 예수님의 말씀은 행위이다(Augustine and Chrysostom). 그러나 여기에는 '점진적 평행법'이 있습니다. 행위가 말씀을 확인합니다.

주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아버지께로 다시 오십니다.

성부와 성자의 영광은 성부께로 돌아가는 데서 성취된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아들(요 1:1-2)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사 육신이 되어(1:14) 우리 가운데 거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육신의 목적은 인간의 본성, 덧없음, 필멸성, 죄를 짊어지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가져옴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고 신성화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경험을 충만하게 사십니다.

그분은 강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신성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고 우리를 아버지와 재결합시키십니다.

이제 그를 통해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필사자와 영원자,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가 제거됩니다.

우리는 이제 항상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장소"와 "거처"에 대한 담론의 상징적 의미입니다. :14).

무한에 대한 우리의 꿈, 영원에 대한 우리의 필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이 채워집니다(시 42:2-3).

이 신성화는 이미 믿음 안에서 실현되었지만 우리는 죽은 후에야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36절의 "나중에 나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의 의미입니다. 고후 2:5은 말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거처인 이 몸이 없어지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거처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거처인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v. 6("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됩니다. De la Potterie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a) 예수는 진리 및/또는 생명이라는 목표를 향한 길(odòs)이십니다.

– 그리스 교부들은 길과 진리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 라틴 교부들은 예수님이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 다른 이들은 영지주의 이원론에 따라 영혼이 진리와 생명의 영역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고 단언합니다.

b) 예수님은 진리와 생명이 설명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고 명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진리이시며 아버지의 계시이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7, 8절). 그분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10-11절).

신명기 30:15-20은 이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로 사람을 대면했습니다. 쿰람 공동체는 단순히 "길"로 스스로를 지칭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또한 종종 자신을 단순히 "길"이라고 부릅니다(행 9:2; 18:25; 19:9.23; 22:4; 24:14.22).

하나님께로 가는 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러”(막 1:3)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9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는 진실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제자들을 향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구신지도 말씀하십니다. 그는 진리(alethèia)이시다. 예수님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요한 1)이십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4:1). “너희가 내 말에 충실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17:8-31).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요 32:18).

그러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요 사탄은 거짓의 왕입니다(8:44). 진리는 영지주의적 의미로 알려질 뿐만 아니라 환영받고 사랑받는 신성한 구원 계획입니다. 이 진리는 이성적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예수는 생명이시다(zoè):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만물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시라 그 생명은 보이게 되었고 우리가 보았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보이신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노라”(요일 1:1) 1); “그분은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 5).

이 생명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고(요 5:26) 아들만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실 수 있다(요 5:21, 5:28). 그분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요 10:10) 오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48-5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그를 붙들자, 그를 붙들자. 그분만이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다른 길은 모두 거짓과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길을 찾거나 도중에 얼버무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만이 중요합니다. 그분에 대한 끈질기고 온전한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입니다. 그분만이 중보자(길), 계시자(진리), 구원자(생명)이십니다.

예수는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그 안에 계시니라

이 구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삼위일체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놀라운 전개로 7절에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며, 10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0절과 10장 38절에서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자로 판단하여 그를 돌로 치려고 했다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자신을 한 분으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계시의 절정에 있지만 세 인격으로 구별됩니다. 요한복음에서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 우리 죄인에게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역동성을 드러냅니다.

모두에게 좋은 자비!

본문에 대한 보다 완전한 설명이나 통찰을 읽고 싶은 사람은 다음 주소로 저에게 문의하십시오. migliettacarl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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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pazio Spad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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