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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사업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인 자비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FARE SPAZIO, 협약 Spazio Spadoni 15월 17일부터 XNUMX일까지 노토(Noto)에서 개최되는 시칠리아(Sicilia)는 자비의 사업 성서학자 카를로 미글리에타(Carlo Miglietta).

하나님은 자비이시다

육체적, 영적 자비의 활동은 신자의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실, 자비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나 연대라는 윤리적 명령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채우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흘러넘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자비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적 의미에서 자비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측면 그 이상입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와 같습니다. 모세 앞에서 하나님은 세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처음으로 그분은 “나는 나다”(탈출 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내가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14:33)고 하셨습니다. 문장의 리듬은 동일하지만 은혜와 자비가 존재를 대신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는 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 이름의 세 번째 선포를 확증합니다: '주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은혜와 진실이 많은 하느님'(탈출 19)”(떼제 공동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성경의 자비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핵심 단어입니다. 그분께서는 단지 당신의 사랑을 확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게 만드십니다. 반면에 사랑은 결코 추상적인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구체적인 삶, 즉 일상적인 행동에서 발생하는 의도, 태도, 행동입니다.”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우시며”(눅 6:36)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모든 자비보다 우선한다면, 자비의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에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자비는 아버지의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참 자녀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기준이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자비를 받은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에 자비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로 가득 차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교회는 지혜롭게 자비를 베풀라는 계명에 언제나 구체성을 부여해 왔습니다. 이미 비오 25세의 그리스도교 교리서에는 일곱 가지 육체적 자비 행위가 열거되어 있는데, 그 중 여섯 가지는 마태복음 25장(마태 35-36)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자신을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갇힌 사람과 동일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그에게 한 것이니라 나…;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 같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31-46).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이니,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0).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비의 육체적, 영적 활동에 대해 성찰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가난의 드라마 앞에서 종종 졸고 있는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자비의 특권을 누리는 복음의 핵심으로 점점 더 들어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우리가 그분의 제자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도록 이러한 자비의 사역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피할 수 없으며, 그들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직접 현존하십니다. 그분의 살은 매맞고, 채찍질당하고, 채찍질당하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도망가는 몸으로 다시 눈에 띄게 되어 우리가 알아보고, 만지고,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

그리고 자비로운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자비의 행복을 선포하십니다. “자비를 베푸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자비를 얻을 것임이요”(마태 5). 마카리오스(Makàrios)는 신의 행복, 곧 신의 조건을 가리키는 고대 용어인 마카르(makàr)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시대에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용어였습니다. “자비로운 자에게 예수께서는 그들이 이미 경험한 것, 즉 자비 외에는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자에게 무엇을 더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비는 하느님과 인간의 충만함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하나님을 가장 순수하게 반영하는 것은 자비입니다. “이웃에 대한 자비로 인해 당신은 하느님을 닮게 되었습니다”(바실 대왕). 자비는 하나님의 인간성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신성한 미래이기도 하다”(Taizé Community).

출처

Spazio Spad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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